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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백낙청ㆍ윤여준ㆍ안경환이 바라본 2012년 대선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12. 17.

백낙청ㆍ윤여준ㆍ안경환이 바라본 2012년 대선


이틀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선의 향방은? 이번 대선의 의미와, 대선 이후 한국 정치가 나아갈 길은? 다소 무겁게 보이는 이런 주제를 놓고 민주·진보진영의 원로 3인이 모여 앉았다.

<창작과 비평> 발행인인 백낙청(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민주진영의 한반도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시민사회 원로들의 모임인 '승리2012 희망2013 원탁회의'에서도 좌장 격으로 활동해왔다.

윤여준(73) 전 환경부 장관은 구 한나라당의 전략가라는 평을 들었던 합리적 보수 인사이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 문재인캠프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고 있다. 12일 방송된 그의 문 후보 지지 TV연설은 큰 반향을 낳기도 했다.

안경환(64) 서울대 교수는 법학자로 2006~09년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인권위와 이명박 정권의 긴장관계는 상당했다. 그의 위원장 퇴임사는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였다. 그는 지난 11월부터 문재인캠프 새정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취임 후 첫 회의에서 민주당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반성을 내놓아 화제를 낳았다.

15일 서울 서교동 세교연구소에서 이뤄진 이날 좌담에서, 백 교수는 이번 대선의 중요성이 1987년 직선제 쟁취 직후 치러진 대선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87년 대선에서는) 제6공화국 헌법도 이미 만들어진 상태였고, 87년 체제의 첫 대통령을 누가 하느냐 하는 다툼이었지 체제 자체가 성립하느냐 못 하느냐는 아니었다"며 이번 대선의 의미를 "낡은 세력과 새로운 세력 사이의 선택"이라고 규정했다.

안 교수는 이번 대선에 대해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견고한 보수층에 대항할 수 있는 넓은 정당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는 선거"라며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 대해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전제하고 있는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고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인 '연합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면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안 교수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 '87년 헌법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윤 장관은 '보수의 자기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잎갈이를 하기 때문"이라며 "자기혁신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하는 사회는 혁명적 상황으로 진입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수가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해야 하는데 안 한다"고 지적하며 이번 대선은 '박정희 모델'을 극복할 새로운 국가 운영 원리가 제시되는 장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특별 좌담 전문이다. 사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아 진행했다. <편집자>
 


▲15일 서울 세교연구소에서 진행된 특별 대담 장면. 왼쪽부터 백낙청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윤여준 전 장관, 안경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18대 대선, 87년 대선보다 더 중요"

프레시안 : 이번 선거를 둘러싼 경쟁이 지난해 10월26일 재보선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며칠 앞인데, 18대 대선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백낙청 : 18대 대선은 87년 대선보다 더 중요한 선거라고 본다. 저는 '2013년 체제'라는 용어를 쓰면서,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단순한 새 정부 출범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2차 TV토론에서 '87년 체제를 끝내고 2013년 체제로 가야 한다'고까지 말씀하시고, 박근혜 후보는 다른 연설에서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를 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이번 대선이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이 87년 선거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87년체제라는 말을 쓰면서 6월항쟁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새 시대에 들어갔다고 얘기하는데, 87년 대선 즈음에는 이미 87년 체제의 기틀이 잡혀 있었다. 제6공화국 헌법도 만들어진 상태였고, 그 87년체제의 첫 대통령을 누가 하느냐 하는 다툼이었다. 87년체제 자체가 성립하느냐 못 하느냐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민주화 세력으로서는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지만, 노태우 대통령도 자기 나름으로 87년체제를 건설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괄목할 성과를 냈고, 공안탄압이 있었지만 민주화도 꾸준히 진전됐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정말 새 시대로 진입하느냐. 아니면 말로만 새 시대라고 하면서 낡은 시대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재집권하느냐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안경환 : 한 나라의 기본적인 정치질서나 가치규범을 반영한 문서가 헌법 아니겠나. 87년 체제에서 탄생한 헌법이 25년 간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생각하면 이 헌법체계가 그대로 간다는 건 잘못하면 정체될 요소가 있다. 헌법해석을 통해 시대정신이 보완돼야 하는데 우리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를 통한 해석만 있고 국민 의식이 잘 반영 안 된다.

헌법체계에 대한 재고려가 필요하다. 작게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 문제가 있고, 크게 볼 때는 대의민주정치라고 믿고 있던 체제가 과연 시대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면 정당제도가 그렇다. 그래서 최근의 '안철수 현상'은 87년 헌법체계가 가진 한계를 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87년 헌법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문들을 누가 잘 받아줄 것이냐를 선택한다는 의미를 갖는 대단히 중요한 선거다.

윤여준 : 저는 낮은 차원에서 말씀드리겠다. '박정희 모델'이라고 하는 권위주의 발전 체제가 있지 않나. 87년 이후 그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었어야 하는데, 민주화 시대에도 새 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까지 보이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 박정희 모델을 청산하고 시대에 맞는 국가 운영과 발전의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저는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국가 운영 원리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진정한 새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백낙청 : 헌법 체계가 바꿔야 할 때라는 점을 안 교수가 강조하셨는데, 동의한다. 헌법 개정을 제대로 할 때가 오긴 온 것 같다. 그런데 헌법과 관련해 우리가 할 일 2가지를동시에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하나는 헌법을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은 멀쩡하게 잘 돼 있는데 실행을 안 하던 것을 실행하는 시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얘기도 나오지만, 헌법 119조 2항은 처음부터 있었지 않나. 이런 것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고, 사실은 제1조 1항·2항부터 실천해야 한다. (웃음)

안경환 :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3가지 원리로 설명한다. 국민주권이 핵심이고, 기본권 규정과 권력구조에 대한 규정이 있다. 그런데 헌법이 왜 있느냐 하면 기본권을 제대로 잘 보호하도록 하기 위해 권력구조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 하느냐, 연임제 하느냐, 내각제 하느냐는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인데 지금껏 우리나라는 헌법 바꾼다고 하면 권력구조만 가지고 얘기했다.

논리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정략적인 차원에서만 (개헌 논의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 왜 개정을 해야 하나? 이 권력구조를 가지고는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그런 전제 하에서 개정이 논의돼야 한다. 그러면 권력구조 뿐 아니라 기본권이라는 면에서 보완할 게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조정할 게 무언인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헌법을 만들어 놓고도 헌법재판소에만 던져 해석하라고 하니, 헌법재판관 개인 구성원의 경향이나 철학이 과도하게 헌법을 지배하고 있는 면이 있다. 국민이 직접 헌법에 참여하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윤여준 : 백 교수께서 헌법을 지키지 않는 문제를 지적해 주셨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선서를 하게 돼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그 선서다. 그런데 막상 선서를 하는 대통령이 헌법을 잘 모른다. 1조 1항을 모른다. 1조는 헌법의 근원적 규범이고 다른 모든 조항을 구속한다. 그런데 모른다. 알아야 지킬 거 아니냐.

우리 헌법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인데 여기에는 3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면 대통령이 최소한 국가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공화국이 뭔지는 알아야 하는데 모르니까 무슨 일이 생기나? 국가권력이 자기 거다. 민주공화국을 모르면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고 공화국을 추구하나? 말이 안 되는 거다.

오죽하면 제가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되고 취임까지의 2달 동안 헌법을 배울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겠나. 법 규범을 내면화하기는 부족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프레시안 : 특히 현 대통령에 대해 그런 지적이 많은데?

윤여준 : 그 양반은 민주주의, 공화주의 이전에 헌법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웃음)

백낙청 : 한 마디만 더 하자면, 헌법에서 개정까지는 안 하더라도 단서나 부칙이라도 달아야 하지 않나 하는 부분이 3조 영토조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온전히 이행된 적이 없고 현 시점에서도 이행이 불가능한 조항이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영토선이 북방한계선(NLL)이라고 하는 판국이다.

윤여준 : 자기모순이다. 모르고 막 주장해. (웃음)

안경환 : 헌법이 분단체제에서 탄생할 때 남북 각각이 가진 정치적 목적 때문인 면이 있다. 60년 이상 지나고 났으니 우리가 공존할 것인지 통일을 할 것인지를 가지고 역사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남과 북에 주어진 공동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윤여준 : 통일이 국가적 이상이니 3조를 그대로 살려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보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조항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니 보완할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되는데, 그것을 헌법개정을 통해 할 것이냐, 다른 법제도를 통해 할 것이냐는 모르겠다.

백낙청 : 기본합의서에 법률의 효력을 부여하는 입법조치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지 싶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지금 정치권의 낡은 세력이 보수? 진짜 보수가 화낼 일"

프레시안 :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두 개로 완전히 갈라진 셈이다. 새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적합성 등 양쪽 세력에 대해 기본적인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백낙청 : 보수와 진보라고 흔히 말하지만 낡은 세력과 새로운 세력 사이의 선택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우리 사회의 낡은 세력이 스스로 보수라고 하는 것은 진짜 보수주의자가 들으면 화날 일이다. 오죽하면 윤여준 장관 같은 분이 화가 나셔서 '진보' 쪽으로 오셨겠나, 진보를 좋아하시는 분도 아니신데. (웃음)

한국의 특수한 정치지형에서 낡은 세력을 보수라 칭하는 것은 스스로 미화하는 얘기다. 그들은 식민지, 분단,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부당하게 취득한 기득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려는 세력이고, 반대편은 '그러지는 말자. 좀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하자'고 하는 이 두 세력 간의 대결이라고 본다.

안경환 : 사람들이 저를 보고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라고 하면서 양쪽에서 비난하더라. (웃음)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는게 진보라면 모든 지식인이 진보이고, 문제제기를 소수자와 약자의 관점에서 하는 것은 진보의 의무다. 그런데 해결 방법에 대해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하는데 현실성이 너무 떨어질 때는 불신을 받게 된다.

보수라고 하면 현재의 체제가 좋다, 별 무리가 없다, 이대로 가자고 하는 것인데, 이의 제기를 들어 보자고 하는 쪽은 합리적 보수이고 들을 게 없다면서 이의제기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것이 극단적인 보수다. 그런데 한국은 극단적 보수가 숫자가 많고 기득권화돼 있고 지역과 결합돼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전제하고 있는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고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인 '연합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면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선거가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견고한 보수층에 대항할 수 있는 넓은 정당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는 선거라고 본다. 국민연대도 그런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준 것이다.

윤여준 :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에드먼드 버크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버크는 보수의 자기 쇄신을 강조한 사람이다.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잎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이 그 점을 무시한다. 맨날 버크를 인용하지만 핵심을 모른다. 끊임없는 셀프 리뉴얼(자기혁신)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하는 사회는 혁명적 상황으로 진입한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수가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해야 하는데 안 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그러니 좋은 시대적 가치를 진보에 다 내줬다. 왕년에 보수의 가치였던 것이 진보의 가치가 됐다. 이렇게 해서 보수가 어떻게 살아남겠나. 그런데 또 이런 얘기를 하면 변절자라고 한다. (웃음) 화석처럼 굳은 진영의식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것인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라 측은하게 여겨진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이 올해 초에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하면서 확 달라지는 것 같았고, 변신하고 쇄신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안경환 : 정책측면에서 시대 흐름에 대해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복지 얘기만 나와도 좌익이라고 하고 비판했는데 복지 공약을 내는 것은 늦게나마 시대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개발한 정책도 있지만 민주당이 개발한 정책을 수용하는 형태인 것도 많았다. 여야를 떠나 시대가 그리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점점 지나면서 '보스'에 결집된 세력이 힘이 생기고 하다 보니, 자기성찰이나 자기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젊은 층이 외면하게 돼 있다. 저는 대학에 있으면서 매년 들어오는 새로운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끼지 않나.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무력해지고 꿈이 없어지고 분노하더라. 그게 안철수 현상의 이유가 아닌가.

백낙청 : 새누리당의 전반적인 체질을 보면 변화할 생각이 없다고 본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돼야 하니까 변화의 모습을 보이려는 의지는 있었을 거라고 본다. 박 후보가 처음부터 '국민 한번 속여먹어야지'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지세력의 반대가 완강하다 보니 안 되는 면도 있고, 박 후보 본인이 개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해력 부족의 문제도 있다. TV토론에서 한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차이가 없다'는 말은 거의개그콘서트 수준 아니었나.

윤여준 : 어록이죠, 어록.

백낙청 : 사실 그런 얘기는 전에도 했다. '김종인이나 이한구나 같다'고 하지 않았나. 기본적인 이해력 부족 같은 게 느껴진다.

윤여준 : 대선 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 후보 비판을 공개적으로 여러 번 한 적 있다.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는 말까지 하고 정강에 넣었을 때, 저는 그 자체로 혁명적 변화라고 봤다. 그러면 과연 박 후보나 당의 중심을 형성하는 의원 및 당원들이 이 시대와 시대의 중심가치를 고민한 나머지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선거전략 차원의 것인가를 봐야 하는데, 그 후에 벌어진 일을 보면 선거 전략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렇다면 본질적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안철수 현상, 87년 체제에 대한 도전"

프레시안 : 사실 일반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민주당도 새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은, 많은 기층 사람들이 '정치 대 반(反)정치'의 면에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쇄신 능력에 대한 회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안철수 현상인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백낙청 : 안철수 현상은 이미 그동안 우리 정치를 엄청나게 바꾸는 동력이 됐다. 지금도 그 동력은 작용하고 있다. 단일화 과정이 삐걱거리는 바람에 단일화 이후 한때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이의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런 흐름을 반전시킨 것은 안철수 현상이 여전히 지닌 동력 아니겠나.

그런데 안철수 현상을 정치 대 반정치로 보는 것은 안철수 지지세력 중에 있긴 있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조는 낡은 정치와 새정치다. 안철수 전 후보가 출마함으로써 정치에 기여한 것 중 하나가, 자기 지지세력 가운데 정치 대 반정치라는 설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새정치 대 구정치'로 바꿔놓은 것이다.

출마 전에 여론조사를 해보면 안 전 후보가 높게 나오면서도 정치하지 말라는 반응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 다 따라갔다. 그런 것만 해도 안철수 현상이 중요하고, 그것을 감당하겠다고 나온 안 전 후보 본인의 기여도가 엄청났다고 본다.

안경환 : 분명한 것은, 안철수 현상은 87년 헌법체제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에 대한 문제제기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라도 이런 이슈를 헌법체제 속에 담아야 한다. 기존의 정당 개혁에 더해, 시민이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질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이지 않나. 여당정치는 일단 돈 벌고 기득권 가지고 적당히 타락한 후에 하는 것으로 많이 생각하고, 야당정치는 투사적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니 건전한 의미의 정치가 될 수 없다. 대학생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반정치란 정치에 대한 냉소 때문인데, 그렇다면 주권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선거가 끝나면 어느 쪽이 이기든 이를 받아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현상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87년에 기여했던 시민사회, 민주화세력들이 그랬듯이 2013년 체제에 문제를 제기해준 선봉장들이다. 받아야 한다.

윤여준 : 민주당도 새롭지 않다, 동의한다. 과거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 여론조사를 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비율은 50%가 넘는데 민주당이 이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다. 누가 당선되든 지금의 새누리당, 지금의 민주당 가지고는 어렵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안 전 후보는 이미 지금까지만 해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본다. 안철수 현상이 아니었으면 양대 정당이 이 정도도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본인이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바꾸겠다는 결심과 의지는 높이 평가하는데, 근원적 고민을 안 한 것 같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뭐냐? 변화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쇄신을 위해 몸을 던지고, 대통령이 되고 안 되는 것은 결과로 주어지면 받고 아니면 정치쇄신을 한 것만으로 보람이 있다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출마선언을 보니 '아. 대통령 되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쉽고 안타깝다. 대선 후 동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지금 식으로 하면 가망이 없다. 좀더 근원적 고민을 한 끝에 거기서 얻은 아젠다를 던지면 폭발적 변화의 에너지가 나올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간다면 사그러질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안철수 현상의 그 동력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국민연대) 아닌가?

안경환 : 민주당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거다. 이대로 되면 집권하는 것이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젊은 사람들이 촛불 들고 광장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분노를 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 속에서 일상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변화에 둔감하고, 그 둔감함을 지켜온 분들이기 떄문이다. 민주당도 민주당만으로는 안 되지만 쇄신하고 외연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안철수 지지층을 수혈할 수 있어야 하고, 합리적 보수도 함께해야 한다는 그런 새로운 문제의식 때문에 탄생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안 전 후보 측은 참여하지 않고 있지 않나?

백낙청 : 제 짐작으로는 안 전 후보 측에서 국민연대라는 말을 먼저 꺼내긴 했지만, 당시는 자신이 단일후보가 될 경우를 전제하고 무소속 후보가 아닌 국민연대 틀을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에 사퇴한 이후 큰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

 


▲백낙청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또 하나 짐작이지만 이번에 결성된 국민연대를 추동해온 분들이, 안 후보 측에서 볼 때는 '민주당 편에 서서 단일화를 압박한 세력'이다. 실제로 국민연대 조직 과정에 민주당이 관여하기도 했다. 그러니 국민연대 들어가는 것이나 민주당 선거캠프에 들어가는 것이나 그게 그거라고 보기 쉽다. 차라리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겠다는 것인데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안철수와 국민연대보다 중요한 건 문 후보와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다. 문 후보 자신은 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한 게 지난 9일의 담화(☞관련기사 보기)다. 그런데 잘못하면 선거전략으로 끝날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인수위원회부터 같이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이다. 다만 약속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구체적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그러려면 안 후보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수위원장이 당내 인사가 되든 안 되든 안 전 후보와 합의하는 인물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인수위 작업에서는 당선자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라도 위원장에 그런 인물을 내세우고 부위원장도 안철수 캠프 출신 하나, 문재인 캠프 하나, 국민연대 하나 이런 식으로 뭘 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건 지난 4일 원탁회의가 '선거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폭넓은 세력과 공동보조를 취하라'고 주문한 사안이다. 그리고 국민연대가 발족(6일)하면서 같은 얘기를 했고 문 후보 담화에서 인수위를 명시하며 받은 것이다. 지금 국민연대가 할 일 중 하나가 이와 관련해 한층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고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 아닐까.

윤여준 : 제가 보기에도 안 전 후보 쪽에서는 국민연대 멤버들이 문 후보 지지세력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안 전 후보가 얘기한 국민연대라는 명칭에서는 퇴색한 것 같기는 해도, 일단 민주당에 약속한 대로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안경환 : 국민연대는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적합한 후보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에 문 후보의 당선이 목표고, 당선 이후에는 이 멤버들을 그대로 가져가진 않을 것이고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연대라는 이름은 있지만 사람은 기존 인선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안 전 후보는 대선 끝나고 출국한다고 하는데?

백낙청 : 안 전 후보가 인수위원장 할 건 아니니 본인이 나가는 건 상관없다. 충분히 협의해서 안철수 캠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된다. 민주당 쪽에서도 부분적인 참여는 당연히 고려하고 있겠지만, 대통합내각을 만들고 시민의 정부를 구성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들러리 세우는 식으로는 안 된다.

안경환 :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죠. 단순히 선거전략이 아니라 후보의 의지이고 새정치를 위한 약속이다. 인수위부터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여준 :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안경환 서울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포스트 박정희'로 갈 수 있을까?"

프레시안 : 그런 전망들은 문 후보가 승리했을 경우인데, 아직 박 후보가 더 유리하다는 말도 있다. 박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다고 한다면 야권의 과제는 무엇이 될까?

안경환 : …생각하기 싫은데. (웃음) 박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그 승리의 의미는 기득권 계층과 물러간 세력의 지지를 받아 된 게 분명하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운동을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지면 마땅한 대안이 없다.

프레시안 : 대선 패배 이후에도 문재인-안철수 간의 협력이 가능할까?

백낙청 : 당연히 해야 한다. 얼마나 잘 하느냐는 두 분의 역량과 마음을 비우는 정도에 달렸다. 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저 나름대로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지금 얘기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다만 사회통합으로부터 더 멀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리라 본다.

박 후보의 지지세력이 우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 분열로부터 이득을 보아온 세력이다. 그분들이 통합을 한다는 것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박 후보의 '100% 통합'이라는 개념도 잘못된 개념이다. 윤 장관도 (TV연설에서) 그건 '통합'이 아닌 '동원'이라 했지만, 아무리 동원해도 100% 동원은 안 된다. 그러다보면 동원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반체제 인사가 되고 반국가 사범이 되기 마련이다. '100% 통합'은 내용 없는 구호가 아니면 배제와 책임전가의 논리다.

윤여준 : 박 후보에 대해서는 제가 선거 시작 이전에 비판을 많이 했다. 가만히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델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어 보인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청와대에서 아버지의 통치를 본 원형체험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은 같지만, 그건 시대에 안 맞는다.

만약 당선 후에 박정희 패러다임인 국가주의, 성장주의, 반공주의가 그대로 간다면 얼마 못 간다. 시대를 거스르는 것이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메가트렌드(대세)에 거스르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물론 선거 과정에서는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국민을 양분시키는 전략을 썼지만 막상 당선 후에는 확 바꿔서 '포스트(탈脫) 박정희'로 가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런 면에서 걱정이 많다.

100% 통합이란 것도 통합의 개념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다. 대립과 갈등이 없는 상태를 상정한 것 같은데, 그런 통합은 없다. 대립과 갈등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한 없다. 갈등의 당사자가 모여 대화와 타협으로 중첩되는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통합이다. 민주주의도 원래 완성된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100% 통합이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위험한 사고방식의 편린을 본다. 동원과 국가주의다.

백낙청 : 박 후보나 새누리당이나 소모적 갈등과 창조적 갈등을 구분할 줄 모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사회의 혼란이 끝나고 일거에 안정으로 갈 가능성은 없다. 여당 측에서는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혼란이고 자기들이 잡아야 안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추구해야 할 것은 지금 같은 소모적 갈등이 넘쳐나는 혼란은 줄이고, 창조적 갈등과 창조적 혼란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야당도 국민을 그렇게 설득하면 좋을 것 같다.

윤여준 : 그런데 소모적인 갈등에서 창조적인 갈등으로 넘어가려면, 정치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복수의 정당이 국회에 모여 자기 세력을 대변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산적인 갈등이 생기고, 그걸 대화와 타협, 다수결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만드는 것인데 정치가 이 기능을 못했다. 그러니 통합이 될 방법이 없다.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해야 할 사람들이 갈등의 당사자, 증폭자가 되고, 국민이 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들으니 정치권에 대한 감정이 불신, 혐오, 경멸, 분노 수준까지 가 있고 그래서 안철수 현상이 생긴 것이다. 정치 본연의 역할을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리 입으로 통합을 외쳐도 방법이 없다.

안경환 : 통합과 관련해 문 후보의 공약 중에 주목할 내용이 있다. 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의회는 새누리당이 다수다. 원래 당정협의회라는 게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정부와 여당의 협력이고 야당은 아예 빠져 있다. 그런데 문 후보 공약 중에 여야정 협의회를 상시운영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얘기다. 미국 대통령은 매주 여야 대표 만나 조찬을 하지 않나. 우리는 대통령이 여당 대표 만나기도 쉽지 않고 야당 대표 한 번 만나려면 사전에 조정할 일도 많다. 이런 데서는 갈등 조절이 나올 수 없다.

문 후보가 통합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합, 대화, 상생의 체제가 이어지면 사회 모든 부분으로 확산되고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게 된다면 의회에서 다수당이 받쳐 주면서 원래의 일사불란한 체제로 쉽게 갈 것 같다. 그러면 통합보다 분열을 가속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반면 지지 세력의 다원성도 있어서 대화와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게 여야정 합의체다.

윤여준 : 그런데 국민의 시각에서는 그것이 실현 가능할까 회의가 많다. 한국정치에 아직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고 선례가 없어 실효성이 있을까? 야당이 참여 안 하거나, 참여해도 파열음만 내서 아무 것도 결정 못 할 수도 있다.

물론 진지하게 시도해야 하고, 그게 성공하려면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그 동안은 말로는 인정한다고 하면서 적대시하지 않았나. 심지어 민주화의 상징적인 존재이셨던 분들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야당 투사이실 때는 권력에 대해 '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셨지만 마찬가지였다. 일단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생각을 가질 때만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시스템만으로는 안 된다.

백낙청 : 그 시스템만 달랑 만들어서는 어렵고 문화를 바꿔야 하고,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반대하고 있으니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대선에서 문 후보가 확실히 이긴다면 아무리 다수당이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법이나 선거법 개정 때 여야 동수로 특별위원회를 만들곤 하는데, 거기에 시민들도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다수당인 새누리당도 법 개정을 거부하기 난처할 것이다.

야권이 승리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프레시안 : 만약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책 부분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잘할지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구체적인 각론에서 문재인 정부에 어떤 과제가 있을까? 남북관계와 사법개혁, 경제민주화 등의 분야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백낙청 : 우선 그동안 안철수 측과 문재인 측으로 갈라졌던 인재 풀을 다시 결합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관계 분야에서 보면, 안 후보 측 남북관계를 맡은 분들도 다 한반도평화포럼 소속이다. 다시 모으는 것은 문 후보 측의 성의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분야에 따라 간단치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조직이나 인력의 풍부함에 비해 민주당이나 문 후보 측의 정책 생산력이 결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또 안철수 측이나 문재인 측이나 담대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아무튼 인수위를 같이 꾸리듯이, 정책 인력도 다시 통합하려는 노력을 문 후보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윤여준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윤여준 :
 이념 성향이 중도적이라는 분들이 문 후보의 대북정책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 단순히 김대중-노무현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어 불만이 많다. 화해협력이 중요하고 6.15와 10.4 공동선언이 중요하지만, 그 분들이 기억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북한 눈치를 보고 끌려간다는 것이다. '퍼주기'라는 표현도 지원액이 크다는 게 아니라 왜 끌려가느냐는 불만 때문에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도 4.0을 얘기하는 마당에 대북정책도 진화한 것을 내놔야 하는 게 아닌가?

저는 선거 전략 차원에서도 문 후보가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역대 통일부 장관들과 도라산에 간 건 상징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그게 많은 사람에게 불안감을 심어줬다고 본다. 또 미, 일이 어떻게 봤을지도 고려했어야 한다. 하더라도 늦게 해야 했다. 그럴 만큼 예민하게 그 부분을 살폈어야 했다.

중도층이 중요하다는 얘기 하는데 오히려 불안감을 키우는 것은 선거전략 차원에서 잘못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이 사이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또다시 희생자가 될 수 있는 만큼,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고 그 당위성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는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백낙청 : 제가 포용정책 2.0이라는 걸 주장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약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윤 장관이 말씀하신 여러 우려사항들에 대해서도 응대할 수준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퍼주기 문제만 해도, 남북연합 건설이라고 하면 아득하게 들리겠지만 정치적으로도 점점 더 접촉면이 넓어지고 공동관리기구를 만든다는 전제로 경협과 대북지원이 이뤄진다면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라 통일과정의 일부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우리도 정치적 약속을 받아내면서 하게 된다.

일부 포용정책 주장자들은 지원하고 대화하면 북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할 거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베트남, 중국과 한반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져도 분단상황의 공동관리에 관한 정치적인 진전이 없으면 기대하기 어렵다. 그 점에서 북은 개혁 개방을 못 한다는 보수층의 논리와 오히려 통하는 입장인데, 다만 그 대안에서 차이가 난다. '어차피 북의 개혁 개방은 안 될 거니 압박해서 붕괴시키자'는 것이 아니고, 한반도 특유의 정치적 경제적인 연합 상태를 향해 차근차근 접근하자는 것이다.

시민참여라는 말도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보수층에서 말하는 '국민적 동의에 기반한 남북정책'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다만 수구세력이 '국민적 동의'를 말하는 것은 자기네들 허가 받아서 하라는 말이기 십상이다. '시민참여형 통일'은 정부를 제쳐놓고 시민들이 통일문제를 좌우한다는 뜻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과정에 민간인들도 한껏 참여함으로써 정권의 변화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없는 민주적 과정으로 남북관계를 추진하자는 거다.

윤여준 : 막말로 북한을 붕괴시키려 해도 내부를 이완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백낙청 : 그래서 한때 북한이 햇볕정책에 반발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 여쭙고 싶다.

안경환 : 검찰개혁 문제는 누구보다 문 후보가 잘 알고 있다. 그 어느 의제보다 국민의 공감대도 높다. 근본적으로 국가에는 정당한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중립성을 갖고 하느냐와 권력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가가 문제다.

 


▲안경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제되는 것 하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 검찰처럼 모든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경우가 없다. 이는 검경 간의 권력 나눔이 아니다. 국민 입장에서도 감시를 일상적으로 할 수 있어야 통제가 된다. 따라서 일상적 민생사건은 경찰에 주는 게 맞다. 검찰은 시민의 감시가 어렵다.

다음은 검찰총장직을 개방직으로 해야 한다. 그럼 일사불란한 명령지휘체계가 무너지게 된다. 법무부를 검찰과 분리시켜야 한다. 법무장관도 검찰 출신이고 청와대 민정수석도 검찰, 그러니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이 관여할 여지를 남겨 두고 감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이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법무장관은 5년 내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종전처럼 1~2년 만에 바꿔서는 검찰 개혁이 불가능하다. 검찰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확고한 소신과 개인적인 부담을 버틸 수 있는 사람과 국민의 관심과 격려 없이는 개혁 안 된다.

윤여준 :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검찰공화국이다, 재벌공화국이다 한다. 이제 검찰개혁은 국민적 동의가 있다. 개혁을 안 하면 대통령이 또 검찰을 권력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불신을 씻지 못할 것이다.

남는 게 재벌 문제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후보마다 다 다른데 국민 입장에서 어느 쪽이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출자총액제니 순환출자니, 소유구조랑 지배구조가 뭐가 다른지도 알기 어렵고 힘들다. 저는 단순하게 보자는 거다. 정치권력도 집중과 연장을 못하게 하려고 권력을 분산시키고 선거제도를 만들어 일정 기간마다 바꾸게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시장권력이 국가를 압도할 만큼 비대해졌다. 견제하지 않으면 국가가 재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국가의 존립을 위한 핵심가치인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원리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공공성을 파괴하는 국가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력이 특정한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분야에서 재벌의 횡포만 바꾸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는 문제의 핵심에 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안경환 : 어느 쪽이 집권하든 과거를 뒤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기에 주력해야 한다. 우선 중산층, 서민의 심리적 위축감을 다스리면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야 한다. 청년층에 팽배한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정치적 담론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은 여건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윤여준 : 이번 대선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어 온 대립과 갈등의 낡은 정치를 극복하는, 특히 양김 퇴장 이후 10년 간 유예된 새 시대, 새 정치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튼튼한 국민통합 위에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면서 오늘과 같이 세계화된 시대 그리고 최근 본격화된 G2시대를 헤쳐 나갈 모범적인 민주공화국을 가꾸어 가는 한편,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후보의 자질과 능력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특히 공공성을 확실히 내면화, 체질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치와 정부개혁,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 등 주요한 개혁과제들을 확실하게 추진할 수 있는 국가운영경륜(statecraft)을 갖추고 있는지를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는 국민들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을 명심, 국민께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백낙청 : 선거 날이 코앞에 닥쳤으니 모두들 투표하시라는 말로 끝맺으려 한다. 첫머리에 말했듯 이번 대선이 워낙 중요한 선거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쟁점을 놓고 전 국민의 보통선거로 결정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일종의 성찬식(聖餐式)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유권자 수가 약 4000만이라는데 실은 그 4000만 명이 정치적 판단력이나 책임감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1인1표의 원리를 수용하고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에는 불교식 표현을 쓰자면, 하심(下心) 즉 내가 누구보다 잘났다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일이다. 게다가 4000만에서 한 표쯤 없어도 대세에 지장이 없건만, 그 4000만분의 1이 각기 자신의 작은 몫을 성실히 해낼 때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 그 오묘한 보람을 이번에 꼭 맛보시게 되길 바란다.
 

     

/곽재훈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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