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다카키 마사오' 후예들의 귀환, 두렵다.정의와 긍정에 힘으로 ...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12. 14.

'다카키 마사오' 후예들의 귀환, 두렵다


"박정희는 다다미 위에 양손을 짚고 예의 바르게 일본식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젊다는 것 이외에는 별 재산이 없습니다. 미숙한 소생을 잘 지도해 주십시오." 유창한 일본어 인사는 일국의 지도자가 아니라 후배의 그것이었다." -<독도밀약>(노 다니엘, 한울아카데미) 

5.16 군사 쿠테타를 성공한 박정희는 1961년 11월 11일,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방미에 오르기 전 일본에 먼저 들른 박정희는 이케다 총리와 회담 후 '가와사키'라는 요정의 오찬에서 이 같은 인사를 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일국의 지도자가 '미숙한 소생' 운운하며 다다미에 양손을 짚은 저자세. 향후 한일회담이 졸속으로 귀결 지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장면이다. 한일회담과 더불어 추진된 독도밀약, 한일 양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밀약의 내용이라고 일본통 경제학자 노 다니엘은 저서 <독도밀약>을 통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미숙한 소생을 잘 지도해 주십시오"

 


▲  만주군 소위 임관 직전의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1차 대선TV토론에 나온 이정희 후보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많은 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박정희 친일행적을 대한 역사적 검토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번번이 좌경세력의 음해나 날조로 취급되었고 박정희와 다카키 마사오라는 두 이름을 등치시키려는 언론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근대화의 아버지'를 넘어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 추앙받는 박정희. 그의 일본식 이름이 대선 TV토론 덕분에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는 현상,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외교의 기본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일입니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아실 겁니다. 한국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는 사대매국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인입니다. 좌경용공으로부터 나라 지킨다면서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습니다. 뿌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1년 전 한미FTA 날치기해서 경제주권 팔아넘겼습니다. 대대로 나라주권 팔아먹는 이들이야말로 애국가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날치기 한 다음에 애국가 부르면 용서됩니까?"

이정희 후보의 이 같은 발언에 보수 언론은 펄쩍 뛰었다. 품위 없는 발언, 격에 맞지 않는 네거티브라는 수식어를 단 기사들이 며칠 동안 대서특필 됐다. 그러나 정작 그 발언이 왜 네거티브인지, 진실에 근거하지 않는 사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명은 없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은 또 있었다. 일본 아사히 TV에서 박근혜 후보를 (일본에) '우호적', 문재인 후보를 '반일'로 분류하는 대선 뉴스를 내보낸 것이다. 대내외의 이런 시각. 새누리당에서야 불편하겠지만 그간 보수정권의 오래된 친일행각을 생각한다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2008년 7월 일본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전 총리가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일본땅이라고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한 것이 <요미우리신문>에 의해 폭로됐다.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경향신문>이 보도한 위키리크스에는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위키리크스에 대통령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버시바우 주미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뉴라이트로 이어진 '친일의 잔재'  

2005년, 김진홍 목사가 설립을 주도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적극 지지했고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해 감사의 인사까지 할 정도였다. 이후 이명박 집권 5년 동안 뉴라이트전국연합 관련 인사들은 승승장구했다. 김성회, 장제원 등 뉴라이트전국연합 간부들이 공천을 받아 18대 국회에 입성했고 제성호 교수, 이석연 변호사 등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중용되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출신들뿐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재평가와 '북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역사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섰던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도 출세가도를 달렸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던 안병직 교수가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 되고 신지호, 조전혁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뉴라이트 조직과 이명박 정권의 밀월은 단지 사람의 중용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승만의 국부 만들기 시도는 상해임시정부보다 한성임시정부에 정통성이 있다는 궤변을 만들었다. 2008년 7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한나라당의 법률 발의는 역사학계와 시민단체, 야당에 극심한 반대를 불러왔다. 뉴라이트 단체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내용은 뉴라이트 역사관의 정점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교육받지 못한 무지한 여성의 잘못된 선택으로 규정했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친일 및 독재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기술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은 이 책의 내용을 근거로 역사의 좌편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명박 정부는 힘을 이용해서 기존 역사교과서의 수정까지 요구하는 무리수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의 역사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8년 5월 27일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현행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 대안교과서의 출간으로 걱정을 다소나마 덜었다. 이 책의 출간은 훗날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는 축사를 하며 뉴라이트 인사와 집필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다시 부활을 꿈꾸는 친일 후예들과 김복선 할머니의 죽음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열린 선진화시민행동 주최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 서경석 목사,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김진홍 목사 등 참석자들과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 그러나 친일 청산에 뜻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영조 교수는 과거 발언 때문에 공천이 취소되는 등 헤프닝이 벌어졌지만 "일제시대 우리 조상은 일본제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독도는 국제적 분쟁지역" 등 왜곡된 역사관으로 논란이 된 하태경의 공천은 그대로 인정했고, 그는 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인사들이 좌파 정권의 집권을 막겠다며 속속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웠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박근혜 지지 선언을 했다. 교과서포럼의 상임이사를 맞았던 박효종 교수는 박근혜 캠프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진홍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이석연 변호사도 박근혜 후보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은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친일파를 득세시켰다. 이명박 정권 5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일 세력과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뉴라이트 세력들은 이명박 정권 창출에 기여했고, 이명박 정권은 그들에게 힘을 부여했다. 어렵게 정립된 역사는 숱하게 부정되었고 4.3항쟁, 5.18 민주화 운동를 펨훼하고자 하는 세력의 준동은 계속되었다. 보수 정권에 기댄 친일세력은 또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다다미에 양손을 얻고 공손히 절하는 지도자, 독도 문제를 정치적 위기 타개용으로 활용하면서 정작 뼛속까지 친일인 대통령. 국민들이, 투표하는 유권자가 다카키 마사오가 누구인지,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친일의 잔재는 영원히 역사 속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역대 보수정권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데 인색했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제 시대 때 강제로 동원된 증거가 없다며 일본군에게 받은 상처에 또다시 고문을 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많은 분들이 세상을 등졌다.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대통령, 친일 청산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대통령. 여생이 얼마 남지 않는 할머니들의 절박함이 유권자의 마음에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