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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펌] 소녀 가장(?) '박근혜'가 받은 6억 원의 실체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12. 6.

박근혜가 입주할 당시 신당동 집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5개나 있는,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큰 주택에 속합니다. 1979년 11월21일 박근혜 자매가 신당동 집으로 이사 올 때의 동아일보 기사를 보겠습니다. 

 

"이집은 방이 모두 5개이나 관리인과 가정부방을 제외하고, 그동안 옮겨온 짐을 놔눈 방 1개를 빼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방은 2개뿐" (1979년 11월21일자 동아일보)


방이 5개나되는데, 관리인과 가정부가 상주하느라, 청와대에서 옮겨온 짐이 많아 박근혜,박근영 자매는 각각 방 하나씩만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우리 집은 가난해, 운전기사도 가정부도 가난해서 겨우 방 하나씩만 사용해'라고 하는 유머 같은 얘기가 동아일보 기사에 버젓이 보도됐습니다. 

 

 

 

1979년 27살의 박근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974년 서강대를 졸업한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한국으로 돌아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청와대 영부인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니라, 각종 단체의 총재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할 당시에도 '새마음봉사단' 총재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새마음봉사담' 총재로 활약하던 그녀가 월급을 안 받았을까요? 당시 새마음봉사단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 단체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1979년 박근혜는 전국 지방신문사 사장 14명을 새마음봉사단 자문위원으로 임명합니다. 지방을 대표하는 국제,부산,매일,강원,전남,제주 등 전국 지방신문사 사장이 청와대에 와서 박근혜로부터 자문위원으로 위촉장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전국 지방신문사장을 단순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단체를 거느린 '총재'가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다고 한다면 당시 미싱을 돌리던 여공들은 인생을 포기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변명하려면 정확한 팩트에 기반을 둔 자료를 찾아 자신의 주장을 제시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무리 계산하고 자료를 찾아봐도 박근혜 후보의 재산이 투입되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을 무료병원 운영을 위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http://impeter.tistory.com/2042

 

오늘 김성주가 라디오 나와서 소녀가장 운운했다는데 저정도의 소녀가장이면 회사사장도 부럽지 않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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