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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 후보님의 키워드 ㅡ 10 밥 먹기 어려웠습니다. 문재인에겐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손이 있습니다.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11. 21.

 
문 후보님의 키워드 ㅡ 10 밥 먹기 어려웠습니다. 문재인에겐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손이 있습니다.

 


밥 먹기 어려웠습니다. 흥남에서 피난 내려와 거제에 정착한 부모님. 문재인은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의 걱정은 늘 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습니다.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사라호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재인을 데리고 부산역까지 갔던 어머니. 하지만 아들 보는 앞에서 끝내 일을 저지르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토마토 한입으로 허기를 달랬던 아픈 기억. 하지만 가난은 문재인을 강인하고 따뜻하게 키운 또 하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수재들만 간다는 명문 경남중, 경남고에 다니던 문재인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는 여학생이 아니라 책이었습니다. 공부보다 책을 좋아했습니다. 시험기간에도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의 별명은 책벌레가 아니라 문제아였습니다. 처음엔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정말 이 별명에 어울리는 짓도 많이 했습니다. 친구에게 시험답안을 알려주다가 정학 당했고, 술담배 때문에 다시 정학 당했습니다. 늘 반듯했을 것만 같은 문재인. 그에게도 이런 빈틈과 허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와 사랑에 빠지지 못한 덕에 서울대를 낙방하고 맙니다.
 


 


문재인에겐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손이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손입니다. 경희대 법대에 다니던 그는 유신반대 시위를 주동하고 학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 발로 걸어가 경찰에 체포됩니다. 경찰에서 조사받고 검찰로 이송되는 날. 그는 사방이 꽉 막힌 호송차 안에서 100원짜리 동전만한 작은 구멍을 발견합니다. 바깥 풍경이 궁금해 그 구멍에 시선을 꽂았는데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차 뒤를 따라 달려오는 모습이 그 구멍 속에 잡힌 것입니다. 재인아! 재인아! 아들 이름을 부르시던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손. 시대의 아픔이 낳은 그 손과 함께 문재인은 학교에서 제적당합니다.
감옥에서 나온 문재인은 강제징집으로 특전사 공수부대에 배치됩니다. 전 국민에게 크게 화제가 되었던 폭풍간지 사진은 바로 이 특전사 시절의 사진입니다. 그는 폭파 최우수, 화생방 최우수 그리고 사격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합니다. 얼마 전 SBS TV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격파시범을 보이던 모습에서 여전한 그의 힘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군대 안 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문재인. 그래서 국민들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힘은 격파나 폭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애국심에서 나오는 거라고.
 


 


군대 간 애인 첫 면회에 무엇을 들고 갈까요? 대개는 통닭이나 떡 같이 배불리 먹을 것을 들고 갑니다. 그만큼 옛날 군대는 배고팠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 씨가 들고 간 것은 통닭이나 떡이 아니라 한 아름의 안개꽃, 문재인은 물론 배고픈 군대 동료들까지 정말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그 안개꽃 이야기는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예뻤는지 잘 말해줍니다. 문재인과 김정숙의 연애는 평탄하지 않습니다. 연애의 역사가 아니라 면회의 역사였습니다. 감옥으로 면회, 군대로 면회, 사법시험 공부하는 절 대흥사로 면회, 하지만 이런 면회의 역사는 결국 결혼으로 결실을 거둡니다.
유치장 안에서 술파티를 한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문재인입니다. 부마항쟁, 10.26 사태에서 이어진 80년 서울의 봄. 문재인은 복학합니다. 사법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전두환 군부를 막아내기 위해 다시 민주화투쟁에 앞장섭니다. 그리고 다시 체포됩니다. 그러다 유치장 안에서 들은 합격소식.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눈물로 바치고 싶었던 합격소식. 문재인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경찰은 유치장 안에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는 역사에 없는 축하파티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후 사법연수원을 차석 졸업한 문재인은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판사 옷을 입지 못하고 변호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운명. 노무현과 문재인의 만남, 그것은 운명이었습니다. 두 변호사는 부산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그날로 합동법률사무소를 시작합니다.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인생이 통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사상공단 여공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무료변론을 하는 등 인권변호사의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이후 노무현은 국회로, 문재인은 부산을 지키는 노동, 인권변호사로 조금 떨어져서 걷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한 방향을 향해 걸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던 두 사람. 지금도 문재인은 노무현 그림자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당선시켰으면 끝까지 책임지라는 대통령의 설득에 문재인은 짐을 싸서 청와대로 갑니다.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문재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졌고 잇몸이 상해 이를 몇 개씩이나 뽑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 개인의 편안함을 돌볼 수는 없었습니다. 청와대 구석구석 문재인의 땀이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끝나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문재인은 큰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정치뉴스를 보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운명 같은 벗을 먼저 보내야 했던 그새벽. 울 수 없었습니다. 슬퍼할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상주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전 국민이 그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였고, 전 국민이 그에게 기대어 슬픔과 분노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수첩속에 고이 접혀 있는 운명 같은 벗의 유서.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문재인은 이제 미안함을 뒤로 하고,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지만 노무현 정신만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은 것도,민주통합당을 만들어낸 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정치의 길을 들어섰습니다. 끝내 피하고 싶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시대정신 때문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낡은 경제와 낡은 정치를 바꿀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나갈 길을 국민의 마음속에서 찾을 것입니다. 약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사람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고, 세금을 제대로 쓰고, 힘없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진실로 겸허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의 꿈과 동행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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