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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부실 대학 양산 폐교 6곳 모두 도입 후 설립… 이주호 장관 당시에 큰 역할 경향신문 | 이혜인 기자 | 입력 2012.08.21 22:17 | 수정 2012.08.21 22:33 댓글0마이피플트위터페이..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8. 22.


‘임정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복원… 김구 선생 국무회의 열던 응접실 등 옛 모습 그대로

ㆍ해방 후 반탁운동의 중심지… 11월23일 시민에 정식 개방
ㆍ김구 선생이 저격당할 당시 발사된 총탄 흔적 고스란히

해방 이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였던 ‘경교장’이 옛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경교장이 15일 광복절을 맞아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된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유럽 별장 같은 고풍스러운 내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구 선생과 각료들이 8차례 이상 국무회의를 열었던 1층의 귀빈 응접실, 김구 선생을 찾아온 손님들이 잠시 대기하던 선룸(Sun room), 만찬을 열었던 식당 등의 모습이 원형에 가깝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경교장을 보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찾아온 시민들은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내부를 꼼꼼하게 둘러봤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피살과 6·25 전쟁을 거친 뒤 지난 60여년간 대만·베트남 같은 외국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돼왔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이 크게 훼손됐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현 소유주인 강북삼성병원의 협조를 받아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 복원 공사를 진행해왔다.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앞에 자리한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이 15일 광복절을 맞아 임시로 공개됐다. | 뉴스1


복원 공사를 맡은 삼부토건의 홍성일 소장은 “병원시설로 쓰이면서 구조 변경이 많이 이뤄졌는데, 1938년 <조선과 건축>이란 책자에 실린 경교장의 평면도를 찾아내 비교적 수월하게 원래 구조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며 “여러 자료사진을 꼼꼼히 살펴본 후 바닥의 작은 타일 하나까지 직접 수제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냈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경교장에는 당시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천장의 시멘트를 걷고 나니 그 안에는 원래의 몰딩과 장식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고, 벽을 부수니 그 안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원형 계단이 그대로 숨어 있었다. 

경교장은 일제시대 조선 최고의 거부였던 최창학씨가 해방 이후 친일 행적을 용서받기 위해 김구 선생에게 임시정부 사무실로 쓰라며 헌납한 별장이다. 원래는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이었지만 김구 선생이 ‘경교장’이라고 새 이름을 붙였다. 

   

1946년 반탁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경교장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서울시 제공


이연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교장은 반탁운동의 중심지였다. 당시 청년들이 현 서울시교육청 건물에서 반탁운동 회의를 연 후 지금 강북삼성병원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경교장 앞 광장에 김구 선생을 지지하기 위해 운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 선생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놓고 틀어진 후 김구 선생이 피살당하기 전까지 단독정부 수립 반대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은 1층만 공개됐다. 하지만 2층에는 김구 선생이 저격당할 당시 발사된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복원돼 있다. 서울시는 11월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일에 맞춰 경교장 전체를 시민들에게 정식 개방할 예정이다. 

성윤경씨(74)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김구 선생의 장례식이 열렸는데, 그때 경교장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경교장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회상했다. 

박지영양(14)은 “엄마가 오자고 해서 따라왔다”면서도 “역사는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명을 들으며 직접 구경하니 재밌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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