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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한홍구 교수가 쓴 ‘정수장학회 강탈’의 전말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두려운 사람 몇을 꼽게 한다면?

by 복지국가 대한민국 2012. 11. 3.

<< 한홍구 교수가 쓴 ‘정수장학회 강탈’의 전말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두려운 사람 몇을 꼽게 한다면? 빼기 어려운 인물 하나는 정치권이 아닌 학계에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조사한 한 교수는 지금 ‘독재유산 정수장학회 해체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자료와 증언들로 무장한 그가 <장물 바구니>란 책으로 박 후보와 그 아버지의 책임을 묻고 나섰다. 그것도 10월26일이라는 의미심장한 날에 출간했다.

이 책은 ‘정수장학회 통사’라고 불러도 좋다. 정수장학회의 뿌리 격인 부일장학회의 설립자 김지태의 출생(1908년)부터 오늘날의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운동까지 100년 넘는 세월을 다룬다.

핵심은 역시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부일장학회 강탈 과정이다. 

법원은 최근 김지태 유족의 소송에서 “국가의 강압”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김지태와 주변인들이 당한 일을 보면 강압이란 말은 차라리 고상하다. 

“연행·유치된 첫날 중정(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가 군 야전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들어와 ‘우리 군이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하였는데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재산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겁을 주었다는 증언은 서부활극 같은 당시 분위기를 생생히 전한다. 

지은이는 “인질강도 사건”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한강 이남의 최고 부자”라는 김지태한테서 왜 하필 땅 10만평과 함께 그가 세운 <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를 빼앗았는지다. 

이 세 언론사들은 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말기의 1960년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생중계하고,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김주열군 주검 사진을 크게 싣는 등 당시에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용감한 보도 활동으로 “세계적 특종”을 했다. 

4·19 혁명 뒤 장면 총리는 부산문화방송이 “혁명의 선봉”이었다며 표창했다. 

언론의 위력과 이용 가치에 주목한 박정희는 이 3개 언론사를 빼앗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에 담은 셈이다. 책 제목 <장물 바구니>는 그래서 나온 표현이다.

이 책은 ‘박 후보는 왜 오불관언하냐’는 현재적 질문에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버지 때 일이라거나, 2005년 이사장 퇴임 뒤로는 무관하다는 해명은 ‘실소유주’ 시비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95년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지분(30%) 처리 문제가 공론화됐을 때, 오인환 당시 공보처장관은 “정수장학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당시 김귀곤 서울대 교수가 이사장이었는데 대표하는 인물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반 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됐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박 후보가 유산을 포기하기 싫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는 박정희가 개인적 치부는 안 했다는 칭송도 듣지만, 문화방송 주식의 상장까지 가정하면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 영남학원 등의 총자산이 10조원어치는 된다고 본다. 

1971년 대선에서 문화방송 지방국 매각대금의 대선자금 사용설이 제기되고,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문화방송 지분 매각 문제가 불거진 건 ‘정수장학회 사유재산설’의 방증이라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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